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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잔카 히메]

 

히메.

 

안녕, 히메. 나야. 너는 이 첫 문장만으로도 나인 걸 알아차렸을까? 넌 감도 좋고 눈치도 빠른 편이니 어쩌면 이 문장을 시작하기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 만약 그랬다면 네게 설렘을 앗아간 것 같아 미안하단 말도 덧붙일게. 하지만 뭐, 이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바로 본론을 말하기엔 정이 없나 싶어 덧붙이지만, 사실 이런 손으로 쓰는 편지는 몇 년 만에 써보는 건지 모르겠어. 시간이 흐르고 성년에 다가갈수록 우리는 누군가들을 겪으며 배워가고, 성장해 나가는데 왜 그들을 위한 표현의 방법들은 하나씩 잊어버리게 되는 건지. 마음을 다 잡고 써보려 해도 이전만큼 움직여지질 않는 펜에 헛웃음이 나올 정도야. 하지만 서툴러도 상관없겠지. 넌 진심을 보는 사람이라 했으니까.

 

서론은 충분한 것 같으니 이제 슬슬 본론을 말할까. 너와 함께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선 나름의 고민을 해봤는데 결국 생각나는 건 한 가지 정도 인 것 같더라. ..조용한 카페를 가서 함께 여유를 즐기다 오기. 계속 대화를 나누기보단 각자 휴식같은 방향으로. 네가 좋아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마니또인 입장에서 너와 함께 하고 싶은 걸 적으라 했으니 이 정도의 이기심은 부려도 괜찮지?

 

본론까지 쓴 내 편지는 여기서 끝이야. 무언가 더 덧붙일 정도로 난 그리 너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었거든. 아쉽다면 나에게 직접 찾아와 따져도 상관없어. (내가 누군지 제대로 맞춰보란 뜻이야.) 그럼 안녕.

 

p.s 최근 뉴스에서 열사병을 조심하라는 보도가 자주 보여. 곁에만 가도 물 내음이 진한 너는 괜찮지않으려나 싶지만 언제나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hint. 최대한 신경을 써 작성해봤는데 이 문장들이 너에게 진심과 다정을 가져다 줬기를.

 

한여름의 중심에서.

마니또가.

[켄고이치 젠]

 

켄고이치 젠 보아라. 안녕 네 마니또다.

 

편지 같은 거 잘 안 써봤지만 그래도 성의없는 편지를 받게 하고 싶진 않아서 열심히 너를 지켜봤거든. 근데 내가 너랑 하고 싶은 걸 찾기전에 네가 나랑하고 싶은 걸 찾은 것 같아... 마니또 된 도리로 그걸 같이 해주는 게 좋은 거겠지? 비록 내가 힘겨울지라도... .... 내 생각엔 네가 나를 가르쳐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물론 내가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그 대상이 되겠지만. 안경 빛내면서 막 비장한 기백을 내뿜는데 즐거워 보이더라. 그래서! 내가 너랑 하고 싶은 건 일일 사제라고 할까. 딱 하루만 너를 스승님이라고 불러주지...! 열심히 가르침에 따르겠어! 재밌을 것 같아? 내가 헛다리 짚은거면 다른 거 하자. 그럼 하고 싶은 일은 여기까지 쓰고.

 

나에 대한 힌트!

 

힌트는 여러개 줄게. 그 정도 기회는 있어야지! 솔직히 이미 들킨 것 같기도 해서 등에 땀날 것 같은데 하하 맞춰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묘하네, 이거. 음... 나는 여기 오래 살았고, 운동부야. 생일은 여름인데 내 생일을 알지 모르겠다.

[이와무라다 아리스]

 

 To. 이와무라다 아리스

안녕, 이와무라다 아리스. 풀네임으로 부르니까 어쩐지 뭔 도전장이라도 써야할 거 같은 느낌이 드네. 내가 평소 널 성으로 부르는지 이름으로 부르는지 모르게 하기 위해서 풀네임으로 부른 것뿐인데. 여기서 성으로 부르면 평소 이름으로 부르는데 일부러 성으로 부른 것 같고, 반대로 이름으로 부르면 평소 성으로 부르는데 일부러 이름으로 부른 것 같을 거 아냐.

편지를 써본 적이 별로 없어서 솔직히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모르겠네. 뭐 써야 하는 게 있었던 거 같은데 그게 뭐더라. 아, 그거. 하고 싶은 일. 너랑 하고 싶은 일은, 아무래도 그거. 베이스 배워 보는 거. 가르쳐줘야 하는 네가 일방적으로 손해본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밴드 악기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게 베이스라, 한 번쯤은 잡아 보고 싶었거든.

써야할 건 다 썼으니, 편지는 여기서 끝...이라고 할 순 없겠네, 아무래도. 다들 어느 정도 길이로 쓸지는 모르겠지만, 내 편지만 너무 짧으면 좀 그렇잖아. 나야 상관없는데, 네 기분이. 마츠오카 선생님이 좋은 취지로 하자고 하신 일인데 이 일로 네 기분을 상하게 하면 의미가 없고.

아, 쓰다가 하고 싶은 일이 하나 더 생각났어. 네가 작곡한 곡 들어보기. 왠지 잔잔한 듯하면서도 힘 있는 곡을 쓸 거라는 인상이 있는데, 실제로도 그럴지 좀 궁금하네. 인상과는 다른 곡을 쓰면, 그건 그것대로 재밌을 거 같기도. 기회가 된다면 들려줘.

이제 또 뭘 쓰면 좋을지 모르겠네. 말했다시피 정말 편지를 써본 적이 별로 없어서. 지금 생각나는 걸 그냥 쓰자면... 이 편지를 보고 네가 날 맞힐 수 있을지 궁금해. 정체를 숨기고 편지를 써본 적은 더더욱 없어서. 만약 맞히면, 간단하게 선물 하나 줄게. 힘내 봐.

길이... 이 정도면 됐으려나. 그럼 이만.

From. 시계토끼

여름의 편지, 마니또 드림1